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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겨누다

     익명A

※ 본 글에 나오는 인명, 지명, 명칭은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합니다. 현실과 픽션을 혼동하지 말아주세요.

 

 

 가장 화려한 꽃이 가장 처참하게 진다고 했다. 제노는 그 말에 어폐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보잘것없는 꽃이 그렇게 된다면 세상에 공평이라는 것은 없어 보일 테니까. 그리고, 제일 눈에 띄는 만큼 꺾이기도 쉬우니까. 제 목에 들어온 칼을 보며 자조했다. 상대는 제노의 웃음을 보더니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노는 칼날을 맨손으로 잡았다. 손을 따라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칸나 꽃밭. 그걸 떠올리며 제노는 또다시 웃었다. 웃는데 눈에는 냉기가 서렸다.

 

 “숨통을 끊는 데는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 자네는 이리 망설여 나로 하여금 자네를 거둘 수밖에 없게 하는가. 제노는 자객의 손에서 칼을 뺏어 그대로 자객의 복부를 꿰뚫었다. 무예에 관심이 없고서는 가능하지 못한 힘과 기술이었다. 작게 새가 우는소리가 들렸다. 초봄의 해는 늦게 뜨는 탓에 여전히 하늘은 검었다. 제노는 피가 떨어지는 손을 바라보다가 밖에 서 있을, 윤 내관을 불렀다. 여봐라, 어의를 데려오거라. 칼이 꽂힌 채로 싸늘하게 식은 시체를 바라보던 제노는 어의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온화하게 웃었다. 인준아.

 

 붉은 꽃을 피우는 자, 제노의 호는 화개였다. 화개, 이제노. 이 모든 것은 대한 제국의 황태자를 칭하는 호칭이었다. 손에 명주 천이 감기기 시작했다. 동이 터온다. 호랑이 눈에 빛이 서렸다. 어김없이 하루는 시작된다.

 

 

총을 겨누다

 

 

 간밤에 황태자의 처소에 자객이 들었다고 했다. 분명 입을 막았는데 궁이라는 것이, 막은 이야기도 새어나가곤 했다. 자객을 뭉갠 것이 황태자 본인이라고 했다. 그런 소문이어서 제노는 굳이 와해시키지 않았다. 반 황제파들로 하여금 대놓고 들으라는 심보였다. 유유자적하게 궁을 거닐던 제노의 옆에 재민이 붙었다.

 

 “소식 들었사옵니다..”

 “여기 우리 둘 밖에 없어”

 “화개, 자네 정말로 괜찮은가? 아니군. 또 무턱대고 칼을 잡은 모양이지, 쯧. 내가 자네 때문에 명이 줄어, 준다고.”

 

 재민의 잔소리를 익숙하게 흘려들으며 제노는 자신의 처소로 발을 옮겼다. 자객이 든 것을 핑계 삼아 편전 회의를 빼먹을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무슨 중대한 발표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재민은 자신의 말을 들은 척도 않는 제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오늘 내 편전 회의 내용을 네게 일러주나 봐라! 씩씩거리던 재민은 이내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 황태자를 친우로 둔다는 것은, 굉장히 속이 썩는 일이라는 것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 중 아무도 모를 거라고 위로하면서.

 

 제노는 씩씩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재민의 뒷모습을 보다가 동선을 바꿔 비원으로 향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암살의 위협을 많이 겪었다고는 하지만 제노의 나이 갓 스물이었다. 비원은 선 황후가 사랑하던 곳이었다. 곳곳에 심겨진 꽃과 나무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비원을 관리하는 궁녀가 제노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들지 말라고 하세요. 궁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원은 아직 겨울을 품고 있었다.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 군데군데 핀 목련이 그를 증명했다. 탐스럽게 핀 목련을 바라보다가 다가가 손을 뻗는 순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제노는 품 안의 은장도를 쥐었다. 칼을 겨누었다. 눈앞에는 놀란 눈의 소년이 서 있었다. 뭐하는 놈이냐, 낮게 깔린 제노의 말에 소년은 머뭇거렸다.

 

 “길을 잃었습니다. 여기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어요.”

 

 거의 울듯한 얼굴이었다. 제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진심이 아닌 것 같지도 않았다. 칼이 거두어지고 나서야 소년은 눈물을 뚝뚝 떨궜다. 미치겠네. 결자해지라고, 제노는 일단 제 품을 뒤적여 당과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거라도 쥐여줘야 할 거 같았다. 소년에게 울지 말고 길을 쭉 따라 내려가라 이르자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소매 끝에 살짝 보이는 손이 제법 곱다고, 스치듯 생각했다.

 

 소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비원을 느긋하게 거닐 수 있었다. 그림자가 지는 것을 보며 스스로 혀를 찼다. 곧 재민이 자신을 데리러 올 터였다. 옆의 나무를 짚고 제노는 나직이 읊조렸다.

 

 어마마마, 오늘도 제가 살아났습니다.

 

 장하다고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뱉자마자 목소리가 들렸다. 재민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였다. 웬일로 상선이 제노를 마중 나와 있었다. 제노는 말없이 그를 따랐다. 좋지 않은 기우가 다시금 목을 조여 왔다. 뱀의 똬리였다. 분명 풀려났다고 믿었는데, 풀려난 적이 없는 기분.

 

 제 아비의 얼굴과, 좌의정, 그리고 그 옆의. 비원에 서 본 소년이 같이 있는 것을 보고서야 제노는 표정을 굳혔다. 편전 회의에서 나온 것이 어떤 안건인지, 오늘은 기필코 자신에게 귀띔을 해줬어야 했다며 애꿎은 재민을 책망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제노의 말에 황제는 느리게 고개를 들라 손짓했다. 느리게 이어지는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의 것. 제노는 옆의 여우를 바라보았다.

 

 “좌의정의 남식 지성과 혼례를 거행할 것이다.”

 “허나,”

 “오늘 편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황태자이니라.”

 

 제노는 입을 다물었다. 제 아비의 눈동자를 읽는 순간 큰 그림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유구하게 반황제파에 서 있던 우두머리의 자식을 자신과 엮는다. 황권을 다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아니면 저 여우가 칼을 들이밀기라도 했나? 제노는 내리깐 속눈썹 새로 좌의정의 동태를 살폈다. 아직 새끼 호랑이에게는 뭣도 보여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표정에 이를 갈았다. 그리고 시선은 그 옆의, 울어서 눈이 약간 발갛게 부어있는 소년에게로 이어졌다. 박지성. 박 家의 지성이라고 했다. 그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더니 당과 하나로 우리는 지독한 인연으로 얽혔구나. 제노는 머리가 아파졌다. 가장 화려한 꽃이 가장 처참하게 진다. 나쁜 일이 있고 나면 꼭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는 것은, 이젠 공식이 되어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제노는 요즘 들어서 혼례가 거행되던 날의 비디오를 자주 돌려보곤 했다. 꽃가루가 날리고 모두가 환호하던 그 순간, 지성과 자신의 표정이 어땠더라. 이젠 희미했다. 소리를 들은 건지 지성이 어디선가 달려와 리모컨으로 스크린을 껐다. 또 저를 놀리시는 거지요, 폐하. 그 목소리가 귀여워 제노는 웃었다. 그래, 요즘 들어서 이 비디오를 자주 돌려보고 싶어지는 이유가, 제 앞에 있었다.

 혼례가 거행되고 나서, 이렇게 친해지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같은 궁에서 살면서도 그랬다. 사실 제노는 괜찮았는데 지성이 내외를 했다. 제노는 그 기간을 손으로 꼽다가 까먹어서 그냥 잊어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지성이 다가왔다. 그래서 제노는 그걸 받아들였다. 계절의 흐름과 비슷했다. 봄같이 찾아와 여름처럼 스며들어 가을처럼 고요해졌다.

 

 “어, 눈이 옵니다.”

 

 그리고 겨울처럼 사랑스러워졌다.

 

 조정은 요 며칠 조용했다. 친황제파와 반황제파가 화해를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현 황제가 비로소 탕평을 이루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이상하리라만 큼 고요하면 늘 뒤가 구렸다. 황제는 제노를 불러 늘 당부했다. 어디서든 몸을 삼가라고. 제노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제 어린 황태자비를 생각했다. 만약 폭풍이 일어나면, 제 편을 들어줄까 아니면 제 아비의 편에 설까. 아비인 좌의정은 황태자비를 죽일까, 살릴까. 그 모든 것의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왜냐면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일들은 꼭 일어난다. 제노는 이른 새벽, 새벽이라고 하기도 뭣한 칠흑 같은 순간에 눈을 떴다. 제 옆에는 지성이 곤히 잠든 채였다. 눈이 비로소 어둠에 익숙해지자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복면을 쓴 사내들 수십 명이 침소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제노는 낮게 욕설을 읊조렸다. 이런 씨발 새끼들이. 황태자는 제 옆에 곤히 잠든 제 반려를 깨웠다. 그리곤 손을 꽉 잡았다. 비몽사몽한 채로 지성은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든 것을 파악하고 나서의 눈동자는 유독 검고 깊었다. 괜찮아, 괜찮다. 그러니까.

 

 “하나, 둘, 셋. 하면 뛰는 것이다. 알겠느냐.”

 

 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노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하나, 둘. 둘은 달리기 시작했다. 자객들은 둘이 사라진 것을 눈치채고 궁을 쥐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궁을 빠져나와 비원으로 향했다. 비원으로 향하던 중 자객들이 둘의 뒤로 따라붙었다. 탕, 총성이 울렸다. 제노는 지성을 앞세웠다. 탕,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제노의 한쪽 팔이 꿰뚫렸다. 탕, 도박을 할 차례였다. 황태자는 덤불로 몸을 던졌다. 구르면서 의식을 잃었다. 팔이 아린 게 아니라 눈앞에 지성이 어른거렸다. 잘 도망갔을까. 잘, 견디고 있을까.

 

 지성에 대해 아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겁이 많다는 것인데. 이 상황에 겁먹고 또 울고 있지는 않을까. 눈앞이 검어졌다. 제노는 그 순간 자신이 고래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깊고 깊은 심해로 가라앉았다. 끝이 없었다. 그리고 계속 지성을 생각했다.

 

 스며든다는 것은 그렇게 위험했다.

 

 눈을 뜨자 자신의 침소였다. 옆에는 간호를 하다 잠든 것인지 자신의 손을 붙잡고 겨우 잠든 지성이 있었다. 마냥 검지도 않은 그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손끝에 따뜻한 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지성이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동자에 자신이 담기자 물기가 다시 차올랐다. 제노는 웃으며 머리칼에 입을 맞추었다. 스며드는 순간부터 사랑이라고, 재민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스무 살의 황태자에게 찾아온 사랑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절망적이었다. 그렇지만 달았다. 왜냐면 옆에 있었기 때문에.

 

 옆에 있었기 때문에.

 

 새벽녘의 습격은 반황제파가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에 이어 반란을 위한 사병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반항 제파의 숙청이 불가피해졌다. 지성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 지성을 폐비해야 한다는 여론과 지성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맞부딪혔다. 제노는 그 둘을 다 듣지 않았다. 황제에게 간곡히 청했다. 그냥, 황태자비는 이 일에서 배제시켜달라고. 황제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조정 회의에서 한참을 토론하던 주제는 결국 폐비 정도의 선에서 끝내자는 결론으로 맺어졌다. 폐비, 폐비라. 제노는 그 단어를 곱씹고 곱씹었다.

 

 궁에 들어와 침소의 문을 열었는데, 지성이 없었다. 흔적조차도 없었다. 애초에 없는 사람처럼 됐다. 아닐 거다, 생각하며 계속 궁을 돌아다녔다. 궁을 서른일곱 바퀴 돌고 나서야 제노는 대청마루에 주저앉았다. 시린 겨울이어도 네가 겨울이어서 좋았는데, 이제 네가 없는 겨울을 어떻게 버텨야 하냐고 그 자리에 앉아 내내 지성의 이름을 불렀다. 뜬 눈으로 나흘을 밤을 새웠다. 그리고 닷새를 샜다. 어의가 다녀가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꿈을 꿨다.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데 내가 너를 안아주지 못했다.

 

 제노는 눈을 떴다. 옆에는 여전히 어의가 있었다. 지금, 몇 시지? 글쎄요. 일단 이틀을 내리 주무신 건 알려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어의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이어졌다. 제노가 지성을 내리 앓는 동안 반황제파는 숙청되었고, 지성은 지명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지성에 관해서는 늦어지는 자신이 원망스러워 어의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어의는 미동도 없이 꼿꼿이 앉아 있다가 느리게 제노의 등을 토닥였다. 친우로서의 예의였다.

 

 “인준아, 나..”

 “그래, 알아. 울어. 울어라.”

 

 눈이 네 눈물도 삼켜주겠지. 그 말을 들으며 제노는 더 펑펑 울었다. 소리는 없었다. 인준은 느리게, 하지만 계속해서 제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픈 2월이었다.

 

 꿈을 꿔서, 막상 달려가 보면 너는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나 나는 한 발 늦었다. 이제노가 황제가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전 황태자비 즉 폐비 박 씨를 지명수배한 일이었다.

 

 “내 생애를 걸고, 내 이름을 걸고 폐비 박 씨를 지명수배 한다.”

 

 간절하다는 뜻이었다.

 

 

 

 제노가 황제가 되고도 바뀐 것은 없었다. 여전히 친황제파와 반황제파의 싸움이었다. 무료했다. 제노는 영리한 머리로 조정을 잘 이끌어 나갔지만 이따금 친반의 싸움에는 진절머리를 냈다. 세간은 그것이 폐비 박 씨 때문이라며 수군거렸다. 책을 들여다보던 제노는 결재서류를 들고 노크를 하는 재민에 고갤 들었다.

재민은 그가 가만히 서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결재가 된 서류를 받아들고 지나가듯이, 부디 제노가 흘리기를 바라듯이 말을 던졌다. 폐비 박 씨, 살아있대. 제노는 잠을 자지 못해 붉어진 눈으로 재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재민은 그 눈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괜히 말을 했구나.

 

 “살아있대? 박지성이?”

 

 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있대. 박지성이.

 

 제노는 상소문을 뒤적이다가 재간택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상소 서너 개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황제에 즉위하고 나서 하루에 꼭 두 개씩은 올라오는 상소였다. 누군가 들으면 미친 소리라고 웃겠지만, 제노는 여전히 지독한 짝사랑 중이었다. 단지 제 아비가 반황제파라는 이유만으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황태자비를, 즉위를 하지 못해 황태자비로 남은 그 소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하필 사랑이라는 것을 그날 깨달아서, 하필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아버려서. 제노는 서류를 내려놓고 안경을 벗었다. 눈이 뻐근했다. 오늘도 잠을 자긴 글렀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안경을 썼다. 서류 속의 활자가 온통 박지성이었다.

 

 제노가 잠을 자지 못하게 된 것은 그날의 트라우마였다. 사실 그건 핑계였다. 지독하게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반황제파한테 보란 듯이 살아남아서 황제가 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그걸 알았는지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독한 황제가 즉위했다는 말이 반황제파 사이에서 떠돈다 했을 때는 미친 듯이 웃었다. 미친 듯이 웃다 보니 울고 있었다. 개씨발놈들. 제노는 나직이 욕설을 뱉고 안경을 벗었다. 당일치 업무를 끝내고 비원으로 향했다. 달라붙는 상궁이며 내시들을 내쳤다. 비원에는 온통 제가 그리워하는 것들뿐이어서,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제 어머니, 그리고 박지성.

 

 오랜만에 잔잔하게 빛나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꼭꼭 숨겨둔 잠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유년시절의 자신과, 아니. 사실 모든 자신을 이곳에 묻어놓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제노는 눈을 감았다. 인기척에 눈을 번쩍 떴다. 복면을 쓴 사내가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제노는 남자의 눈을 마주했다. 검고 깊다. 겨울이다. 재민의 목소리가 오버랩되었다. 박지성 살아있대. 떨리는 손으로 복면을 벗겼다. 사내는 굳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복면이 땅에 떨어지면,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지명수배범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삐익, 길게 호각 소리가 울렸다. 황실 경호팀이 달려들어 제노에게 칼을 겨눈 지성을 잡았다. 지성은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잡혔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사형선고였다. 사형선고, 제노는 입안이 바싹 말랐다.

 

 

 

 믿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로 정해질 때 비참해진다. 제노는 비참하다 못해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긴 짝사랑의 끝은 파국이었다. 속이 쓰렸다. 그리웠던 만큼 배신감이 차올랐다. 배신감이 차오르는 만큼 사랑스러웠다. 제노는 숨죽여 울었다. 그 앞을 지키는 것은 여전히, 어의였다.

친황제파는 이번에야말로 황제의 권위를 보여줄 때라고 했다. 폐비 박 씨를 공개 처형하라고 했다. 제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성의 사형 날짜는 쉽게 잡혔다. 제노의 손에도 쉽게 총이 잡혔다. 은색의 총에는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이 새겨져 있었다.

 

 지성은 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사형 집행일이 되자 모습을 드러냈다. 통통했던 볼살이 내려 제법 다부진 얼굴이 되어 있었다. 체념한 듯한 얼굴이었다. 제노는 그 앞에 섰다. 지성은 제노를 올려다보았다.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 찰나의 시선이 너무도 달콤해서 제노는 지성의 죄를 사할 뻔 했다. 사랑이란게 이랬다. 사람을 꼭 바보로 만들었다. 제노가 지성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왜 나를 죽이려고 했느냐.”

 “폐하.”

 “대답하거라.”

 

 지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웃을 뿐이었다. 제노는 묵묵히 지성을 기다렸다. 지성은 여전히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을 보며 제노는 방아쇠를 당겼다. 지성은 한 마디를 더 뱉었다. 총알이 관통하는 순간 고꾸라졌다. 온통 주변이 고요했다. 제노는 아무렇지 않게 뒤를 돌았다. 집행장을 벗어나 비원으로 향했다. 비원에 도착한 순간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주저앉아 울었다 지성은,

 

 “사랑합니다. 폐하.”

 

 이렇게 말했다.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널 사랑해

 두손을 모아 장미꽃을 바치며 널 사랑해

 우리는 서로의 눈이 아니라 발밑을 보며 춤을 추고 있었지

 

 신철규, 권총과 장미

 

 

 

 지성은 제노와 만났던 처음을 기억했다. 그 때 먹었던 당과의 맛도 기억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첫눈에 반하는 순간 그 말을 믿었다. 자신과 혼례를 할 사람이 제노라는 것을 알고도 내심 기뻤다. 그랬다. 지성은 숨기는데 능하고 드러내는데 서툴렀다. 서투른 열여덟의 지성은 홀로 사랑을 키워나갔다. 자신의 아버지가 좌의정이라는 것에 가끔 원망을 하기도 했다. 제노가 황태자인 것에 대해 원망하기도 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우린 어땠을까. 제노가 팔을 뻗었다. 지성은 그 팔을 베고 잠들었다. 소소한 행복이었다.

 

 이 꿈이 깨지 않기를 바랐건만, 반란이 실패하고 지성의 폐비가 확정된 순간 지성은 모든 것이 예전처럼 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부러 자신을 없는 사람 마냥 제노가 생각하길 바랐다.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웠다. 지우고 나니 또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보였는데, 지성은 그걸 잘 참았다. 잘 참은 스스로를 칭찬했다. 칭찬하고 나니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제노와 자신의 침소 위에서, 잠시 눈을 붙였던 지성이 눈을 뜨자 온통 낯선 풍경이었다. 좌의정은 지성을 아들이랍시고 살리려 부득이도 애를 썼다. 지성은 도망친 반황제파의 군락 속에서 살았다. 나갈 수도 없었다. 나가는 순간 죽을 것이라는 직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참 순박했다. 그래서 지성은 그걸 위안으로 삼았다. 나중에서야 지성은 자신이 지명수배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노의 짓이겠지, 지성은 속으로 웃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려던 때, 다시 습격을 준비하는 자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버렸다. 기구한 운명이었다.

 

 다 알아버린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제 아비가 모르게 자객들 사이로 섞여들어, 거짓 위치를 흘리고 그들을 몰살 시키는 것.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서나마 지킬 수 있는 일. 지성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사람들을 죽여 봤다. 타오르는 창고를 보며 지성은 웃었다. 그대로 뒤를 돌았다. 미련이 없었다.

 

 미련이 없었어야 했다. 그러나 궁까지 들어온 이상 자꾸 욕심이 났다. 제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래,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다시는 못 볼 얼굴이니까. 딱 한 번만. 발걸음은 자연스레 비원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노가 있었다. 눈을 뜨기 전에 가야지, 가야지 생각했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찰나 그 얼굴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너무 좋아서 자신이 유구하게 사랑하는 이제노가 좋아서.

 

 삐익, 길게 호각 소리가 울렸다. 모든 일이 수틀렸다. 그러면서도 박지성은 좋았다.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어서. 당신에게 겨누어진 총구가 다 나에게로 올 수 있어서.

 

 그냥 당신이 좋았다.

 

 왜 자신을 죽이려고 했냐는 말에, 굳이 구차한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아서 당신이 나를 오해해도 괜찮아서 그저, 이 순간마저도 좋아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머리를 무언가 스쳐지나갔다. 서서히 고통이 퍼졌다.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지성은 그 순간마저도 방금 자신이 수많은 사람들을 불길에 처넣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순하고 물러빠진 사람. 박지성은 태생부터 그랬다. 눈이 감겼다. 몸에 힘이 빠졌다. 비로소 암전이었다.

 

 박지성이 죽었다.

 

 

 

 제노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재민의 입을 통해서였다. 제노는 그 사실을 알고서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절망이었다. 분명 총을 겨눈 건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자신에게 총이 겨누어졌다.

 

 제노의 머릿속에는 예전에 곱씹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가장 화려한 꽃이 제일 처참하게 진다.

 

 네 사랑을 보아라. 네 사랑의 밀물진 꽃밭에 서서 보아라.

 

 절정에 이르렀던 날의 추억이 너를 더 아프게 하리라.

 

 너를 더 아프게 하리라.

 

 

 

    JENSUNG 1st Collab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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