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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

     사와코

  걔는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유별났다고 해야 하나. 걔가 우리 팀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신분 위조하고 다른 회사 들어가서 평범한 회사원 마냥 일하고 금방 정보 빼내오기. 오더 받으면 사람 죽이고 처리하기. 한두 번 해본 일도 아니고 혼자서 척척 시키는 거 잘만 했다. 보통 이런 일들은 2인 1조로 구성됐지만 이상하게 다른 놈 투입 안 시켜준다 했다. 새로 들어온 싹싹하고 순진하게 생긴 신입사원 박지성. 그냥 일반인인 줄 알았지. 걔가 같이 일 할 킬러인줄 누가 알았겠냐고.

  직접 보기 전까지는 정말 일 열심히 하려고 하는 그런 어린 애로만 알고 있었다.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다. 예쁨 많이 받네. 감상평은 딱 그 정도. 언제쯤 진짜 임무 내리려나 가짜 회사에서 가짜 일만 빈둥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딱 오더가 떨어졌다. 꽤나 멀끔하게 봤던 최 팀장이 타겟이었다. 여전히 걔가 킬러인지 모르던 상황에서 며칠간 최 팀장을 지켜보다 회식 후 잔뜩 꼴은 뒤를 쫓았다. 멀지 않은 곳에 최 팀장의 차가 주차되어있었다. 문은 열린 상태였다. 외진 곳에서 설마. 생각이 지나치자마자 곧바로 발걸음은 사람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걔가 있었다.

  "아, 왔어요?"

  놀랄 법도 한데 걔는 태연하게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었다. 딱, 다른 평범한 사람들에게 웃어주는 그런 평범한 웃음. 그리고 걔 앞에는 최 팀장이 벽이 기대 쓰러진 채였다.

  "이제노 씨 맞죠?"

  "나 알아요?"

  "알죠. 얼마나 유명한데."

  유명하긴 개뿔. 처음 듣는 소리다. 어디서 입에 꿀을 발라 온 건지는 모르겠어도 마냥 밉지는 않았다.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의외의 인물이 파트너이자 킬러였다는 것. 저 얼굴로 깔끔하고 멀끔하게 사람을 죽인다는 것. 걔는 그 한 마디 하고 최 팀장한테 다시 걸어갔다.

  "되게 멍청하더라고요. 처리하기 쉽대서 첫 임무로 받은 거지만 너무 시시하잖아."

  재밌는 이야깃거리라도 되는 양 살벌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최 팀장의 가슴에 칼이 꽂혀 있었다. 붉은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지만 여전히 꽂힌 칼 덕에 완전히 터져나오지는 않았다. 붉은 피는 여기저기 튀어있었다. 꽤나 징그러운 광경이었으나 걔는 눈 하나 꼼짝 안 했다. 생선 회 뜨는 상인들처럼 너무 당연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겨울이라 옷 두껍게 입어서 다행이다. 그쵸. 뒤처리하기도 쉽구."

  "너 이름이 뭐야?"

  "저요? 알잖아요, 박지성 사원입니다."

  "말고. 너 진짜 이름."

  걔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못 믿네. 진짜거든요."

  "몇 살이야?"

  "호구조사해요? 어차피 이따 알게 될 거. 스물 넷이요."

  걔는 바로 칼을 빼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피. 아무리 많이 본 광경이라지만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걔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흐르는 강물 보는 것만큼 평온한 얼굴이었다. 걘 가만히 그걸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고 웃어줬다.

  "차 갖고 오셨죠? 가서 앉아있을게요. 얼렁 처리하고 오세요!"

  칼을 쓱 닦더니 그대로 가방에 넣고 지나쳐갔다. 걔를 바로 붙잡았더니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너 옷에 피 튀었어. 아무리 밤이라지만 사람들한테 혹시라도 걸리면 안 되잖아. 나름 걱정하는 투였으나 걘 옷을 쳐다도 안 봤다. 걱정 마요. 안 걸리게 바로 뛰어갈게요. 그러고 정말 달려갔다. 정말 이상한 애다.

 

 

 

푸른 바다

 

 

 

  "형."

  "엉."

  "이거 내기할래요?"

  "내기는 뭔 내기야."

  "10만원 빵."

  "콜."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첫만남과 달리 몇 번 만나다보니 금세 친해졌다. 제노는 툭하면 지성과 묶여서 나갔다. 보통 일 몇 번 같이 하면 들킬 위험 있으니 자주 바뀌는 편인데 유독 정 회장이 지성을 예뻐하는 편이었다. 박지성이 깔끔하다는 이유였다. 제노도 그 점에서는 인정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 죽이고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방긋 웃어넘기는 거. 깔끔하고 소름 돋았다. 지성이 사람을 처리하면 제노는 시체를 처리한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피 냄새와 시야는 언제든 보기 힘든데 지성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게 회장의 예쁨을 산 거다.

  "무슨 내기해?"

  지성이 제노 이외에 친해진 사람이 하나 있다면 매일 같이 대화에 껴드는 최정민이었다. 같이 일한 적도, 같은 팀도 아니면서 박지성 귀엽게 생겼다 이유 하나로 말 걸고 친해진 애. 지성은 처음엔 좀 꺼려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다는 듯이 둘은 금방 친해졌다. 지성에게 별 생각 없던 제노마저 자꾸만 눈길이 가게 됐으니까. 정민은 익숙하게 지성의 옆으로 가 지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손길이 익숙하다는 듯 지성은 정민을 보며 웃었다.

  "아, 그, 이번에 김대표가 따로 의뢰한 거요. 아무리 제노 형이라지만 과연 10분 만에 윤 이사의 거래건을 빼올 수 있을까, 뭐 그런 거?"

  한 손으로는 펜을 돌리면서 여유롭게 말했다. 제노가 그 펜을 쏙 뽑아갔다. 눈 앞에 종이에 계획을 슥슥 적어내려갔다. 지성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제노의 어깨를 때렸다. 이 형 자신감이 대단하네. 정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제노면 약간 가능할 지도 몰라.

  "너도 낄래?"

  "껴도 돼?"

  "아니. 끼지 마."

  "뭐야. 둘만 같이 한다고 나 왕따시키냐?"

  정민과 지성이 친한 만큼 그와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제노는 그와 더 친한 게 당연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지성이 온 뒤로 자꾸만 틱틱거리게 됐다. 정민은 제 의자에 털썩 앉아 돌려 제 자리로 금방 돌아갔다. 둘이 노셔. 난 이만 빠질게.

  

  제노와 지성이 속해있는 회사라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겉으로는 회사인 척 하는 주제에 안으로는 거대한 그물을 펼친 조직. 혹은 살인대행이나 해주는 미친 조폭놈들이 모인 곳. 건물만 보면 멀쩡하고 평범하지만 알 사람은 알고 있다. 나름 큰 곳이었다. 은밀하고 거대한 뒷조직. 오죽하면 언론에 나오는 유명인들까지 이곳과 거래를 하겠나 싶은 그런 회사.

 

  제노와 지성은 그곳에서 가짜 회사로 출근한다. 짧으면 2주, 길면 몇 달도 있는 상주하는 가짜 회사에서 그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성실하거나 고의적인 실수를 하거나 게으르거나, 캐릭터는 항상 달라진다. 그런 척들을 하며 정보를 빼오고 누군가를 죽이고 처리하는 게 둘의 일이다. 간단히 말해서 스파이, 그게 그들의 진짜 직업이다.

  무슨 성격으로 맞춰지건 지성은 어디에서나 예쁨을 받았다. 성실할 때는 성실하다고, 실수를 할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게으를 때는 열심히 하라며 누구 할 것 없이 다들 지성에게는 관대했다. 제노만 그 누구에 속하지 않았다. 친해진 이들은 제노 더러 그랬다. 지성 씨 너무 귀엽지 않느냐고. 비위 맞춰주려 웃으며 귀엽죠 대답 하려해도 제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반문했다. 제노는 거의 늘, 지성의 선배로서 일하게 되며 지성에게 잔심부름을 많이 시켰다. 그냥 편하니까. 그덕에 핀잔을 좀 많이 들었다. 지성이 좀 그만 괴롭히라는 둥의 장난 어린 얘기들. 제노는 그저 속으로 웃을 뿐이었다. 귀엽긴 무슨. 쟤가 저 얼굴로 사람 얼마나 죽였는지 아나.

 

  퇴근하면 늘 같이 간다. 같은 아파트를 산다는 핑계다. 그래봤자 회사에서 내어준 집이라 프라이버시가 완전히 보장되는 곳은 아닌 그런 아파트. 막상 차에 올라타면 둘 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주차장에서 게임이나 몇 번 하다가 한 시간쯤 훌쩍 지난 후에 핸들을 잡는다.

  "어디 갈래?"

  "어디 가자고 하면 갈 수 있기는 해요?"

  "기분이라도 내는 거지."

  "그럼 난 바다."

  "가자."

  "말은 쉽지."

  운전대를 잡은 건 제노였으나 한숨을 푹 내쉬는 건 지성의 몫이었다. 지성은 회사 들어온 이후로 하루도 쉰 적이 없으니 그럴 법도 했다. 오더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 매일 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았다. 불쌍하기도  하고, 지 일인데 뭔 상관인가 싶기도 하고. 부드럽게 주차장을 나오며 제노는 운전대를 톡톡 두드렸다. 어떡할까.

  집으로 가는 길은 거리가 꽤 있어 지성은 금방 잠에 드는 편이다. 조수석에 앉았으면 그러면 안 되지, 하고 제노가 몇 번 핀잔을 주었건만 지성은 잠이 많았다. 처음엔 게임을 좀 하며 입을 같이 떠들었지만 어느 순간 말이 없어지더니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제노는 이후로 깨우는 것을 포기했다. 평소처럼 잠든 지성을 깨웠다. 지성은 몇 번 눈을 비벼 잠에서 깼다. 도착했어요? 제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난 또."

  지성은 차에서 내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뭐가 불만이야?"

  "바다 갈 것처럼 말해놓고 안 온 게 웃겨서요."

  "바다 너무 멀잖아."

  "예예. 그럼 그렇지."

  "삐졌어?"

  지성이 큰 소리가 나게 차문을 닫았다. 제노가 슬쩍 물었지만 지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요. 내가 애도 아니고. 그러면서 발걸음은 평소와는 다른 성난 소리가 들렸다. 그 유치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지만 제노는 꾹 참고 지성의 뒤를 쫓았다.

  "담에 가자. 바다."

  "아 안 삐졌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까지도 유치한 싸움은 계속 됐다. 유독 제노는 지성을 놀릴 때 가장 많이 웃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보이는 모습은 정민이었다. 지성이 환하게 웃으며 정민에게 인사했다. 그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있었다.

  "이제 퇴근?"

  "엉. 뭐하러 나와 있냐."

  정민은 대답 대신 제 입에 물린 담배를 가리켰다. 지성은 어느새 정민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안긴 채였다. 정민은 그런 지성을 아들 마냥 또 반가워해줬다. 죽이 척척 잘 맞았다, 아주. 제노는 괜히 심술이 나 지성의 뒷목을 꽉 잡아당겼다. 야. 우리 내일 할 거 많아. 딱딱한 말로 대꾸하니 지성은 정민의 팔을 꽉 잡았다.

  "혀엉. 제노 형이 나 괴롭혀요."

  "너 왜 우리 지성이 괴롭히고 그러냐."

  "둘이 살맛 나지?"

  "조금?"

  장난이라는 걸 알면서도 웃으며 받아치는 정민의 얼굴을 보고 제노는 고개를 돌렸다. 지성은 어느새 집으로 쏙 들어갔다. 야. 너 언제 거기로 갔어. 제노의 소리에 지성이 눈을 돌려 마주했다. 그러고 혀를 내밀어 약 올리려는 듯 메롱 한 번 해주고 문을 닫아버렸다. 지가 햄스터야 뭐야. 지성은 저러고 제 방에 들어가서 한 번을 밖으로 안 나온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 닫힌 지성의 방문을 발로 쾅 찼다. 나도 흥이다.

 

  매번 출근하던 회사에서 벗어나 간만에 외근을 떠났다. 말이 외근이지, 사실상 항상 밖에서 일하기에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가짜 회사 탈출. 딱 그 정도. 숙소에서 빠져나와 부드럽게 핸들을 돌렸다. 유난히 차 안이 시끄러웠다. 그도 그럴 게 사람이 둘에서 셋으로 늘었다. 정민이 꼈다는 뜻이다. 항상 조수석에 앉던 지성도 어느새 뒷자석으로 자리를 이동해 자지도 않고 떠들었다. 시끄러워. 한 마디 했지만 전혀 듣지를 않았다.

  "애들도 아니고 조용히 좀 가면 안 되냐? 박지성은 애니까 그렇다 쳐도 너는 아니지, 엉?"

  "이왕 갈 거 신나게 좀 가자, 야."

  "사람 죽이러 가는데 뭐 그렇게 신난다고."

  "제노 또 무서운 소리하네."

  무슨 말을 해도 장난스럽게 받아치는 탓에 결국 제노는 입을 다물었다.

  이번 목적지는 호텔, 타겟은 둘. 양원 기업에서 내린 의뢰다. 이번 파티에서 두 놈만 처리해달라고. 회장이 예기치 못한 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동안 그 아래의 놈들은 누가 차기 회장이 될지 피날리는 싸움을 하고 있단 소리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 후보 넷 중 하나가 의뢰를 맡겼다. 안타깝게도 타겟은 다른 후보들이 아니었다. 그 후보를 보좌하는 입바른 놈들이 타겟이었다. 왜냐. 의뢰자에게는 그런 괜찮은 변호인이 없거든. 그러니까 큰 돈 주고 사람이나 죽이라 시키겠지.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제노는 엑셀을 세게 밟았다.

 

  호텔에서는 한참 파티가 열리는 중이었다. 차를 대놓고 어느새 정민은 웃음기 싹 빼고 장비를 재정비하는 중이었다. 제노와 지성은 그 옆에서 동선을 다시 파악하며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썼다.

  "조심해."

  "너나."

  "하여간 걱정해줘도 난리야. 아프지 않게 잘 처리하고 와."

  "네가 죽는 것도 아닌데 걱정이야."

  "불쌍하잖아."

  정민의 대답을 뒤로하고 차 문을 열었다.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위로는 씨씨티비가 보였지만 정민이 손을 쓴 뒤라 들킬 염려는 없었다. 중앙 로비 대신 비상구 계단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인이어를 통해 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6층에서  파티 중이고, 그 후보 넷은 10층으로 올라가는 중. 타겟 둘은 바로 옆방에서 대기하나봐. 방음 그렇게 좋지는 않으니까 조심하고."

  제노와 지성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으니 계단에 올라서려했다. 한 층씩 올라가고 있는데 앞서던 지성이 걸음을 멈췄다. 제노가 마스크를 슬쩍 내려 지성을 쳐다봤다. 물음표가 가득 담긴 그 얼굴에 지성이 고개를 숙였다.

  "아, 좀 떨려서……."

  "한두 번도 아니고 새삼스럽다, 너."

  "평소랑 다른 느낌이에요.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니까."

  "어차피 누가 됐건 다 우리랑 상관 없는데 갑자기 도덕심 생긴 거야?"

  지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시간은 여유롭기에 계단에서 좀 더 쉴까 생각을 했다. 정말 긴장이라도 된 건지 지성은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런 그를 보고 제노는 어깨를 툭 쳤다.

  "긴장하지마. 너 잘하잖아."

  "되게 희망찬 청춘 영화 같네요."

  "장르는 조금 다르지만."

  말장난에 지성이 결국 웃음을 보였다.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리길 바랐던 목적이 바로 달성됐다. 가자. 오늘 빨리 끝나면 바다 데려다줄게.

 

  일은 생각보다 빠르고 간결하게 처리했다. 제노가 왼쪽 방을 탐색할 동안 지성 혼자 오른쪽 방을 처리하느라 애먹긴 했다만 예상 시간에 오바되지는 않은 정도. 경호원들이 몰려오는 틈을 타 화장실에 숨어있다 정민이 지시하는 대로 빠져나왔다.

  "나이스샷."

  "카메라 돌려놨어?"

  "주차장 빼고는. 잘 처리했지?"

  제노가 핸들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성은 끼고 있던 장갑을 내던지며 정민에게 몸을 기댔다. 피곤해 죽을 거 같아요. 지성의 목소리가 거슬렸지만 백미러로 굳이 뒤를 보지는 않았다.

  "오늘 급한 일 없지?"

  "누구? 너? 나? 지성이?"

  "다."

  "음……, 없을걸."

  호텔에서 빠져나오며 내던진 질문에 정민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까지는 시간 좀 있지. 왜? 그 물음에 대한 답은 하지 않았다. 어느새 눈을 감은 지성과 함께 차 안에는 다시 적막이 맴돌았다.

 

  "웬 바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인천 서부의 바다였다. 여전히 잠든 지성을 둔 채로 정민과 제노만 밖을 빠져나왔다. 몇년만에 맡는 바다의 내음에 제노는 차에 기대 눈을 감았다. 시원한 바람이 온몸으로 느껴지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정민은 그의 옆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여기서 담배 피우면 잡혀가는 거 모르냐?"

  "더한 짓도 하는 놈이 뭘 이런 걸로."

  제노는 입을 다물었다. 간혹 근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떠드는 말소리와 파도 소리만 들릴 뿐 둘 사이에는 더이상의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차안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지성이 어느새 깨 눈을 비비며 밖을 바라봤다. 강한 선팅으로 인해 안이 안 보여 제노는 그냥 문을 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지성은 한 걸음 밖으로 발을 내딛고 그제야 바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데 오고 싶다던 평소와 잘리 큰 감흥이 없는 얼굴이었다.

  "너 오고 싶다며."

  "뭐야. 지성이 때문에 온 거였어?"

  "드라이브 겸 온 거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정민이 제노를 바라봤지만 제노의 시선은 지성에게 간 채였다. 지성은 주변을 둘러보고 벤치에 털썩 앉았다.

  "저 바다 처음 와봐요. 되게 넓구 시원하다."

  "밤바다 예쁘지 않아?"

  "음. 어둡고…… 조금?"

  "감상평이 뭐야, 그게."

  "여기서 숙소랑 멀어요?"

  "두 시간 넘게 걸리지."

  운전 피곤하겠네. 지성은 중얼거리며 발로 모래를 흐트렸다. 정민은 어느새 차에 올라탄 뒤였다. 둘만 남지 않은 고요한 바닷가에서 제노는 어색함을 못이기고 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데려왔나. 별로 안 기뻐하는 거 같기도 한 지성의 얼굴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성은 가만히 발로 장난을 치다가 고개를 들어 제노와 눈을 마주했다. 그러자 씩 웃어보이는 지성의 표정에 당황한 건 제노였다. 지성은 벌떡 일어났다.

  "고마워요."

  "엉?"

  "얼른 가요. 형 피곤하겠다."

  제 할 말만 하고 차에 올라타는 지성에 제노는 멍하니 그 뒤만 바라볼 뿐이었다.

 

 

  다시 출근하던 가짜의 회사로 돌아왔다. 회식. 정 회장의 눈치가 보여 제노는 지성과 빠지려 했으나 지성이 그런 제노를 꽉 붙잡았다. 형 제바알. 답지 않게 제노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리는 탓에 제노는 고민하다 결국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조건은 취하지 않기. 안 된다고 단호하게 몇 번이나 말하다 결국 가기로 결정 내린 후에는 제노도 내심 기대가 되기는 했다. 회식? 진짜 회사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니까 그럴 법도 하지. 술 자체를 마신 지가 꽤나 오래되었다. 그러고보니 지성이 들어온 이후로는 한 번도 입에 알코올을 갖다댄 적이 없어 제노가 슬쩍 물었다. 너 술 잘 마셔? 지성은 잠시 대답이 없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 한 번도 안 마셔봤어요."

  "엥?"

  제노가 진심으로 놀라 지성을 쳐다봤다. 지성이 그 시선을 피했다.

  "너 스물 넷인데?"

  "안 마셔봤을 수도 있지 뭐……."

  귀엽다. 처음으로 제노는 그런 생각을 했다. 스스로 생각하고도 놀랐지만 입밖으로 내뱉지 않아서 다행이다 뭐 그런 생각을 했다.

  갑자기 잡힌 회식이라 장소는 근처 이자카야였다. 술집 내부로 들어가면서도 지성은 신기하다는 듯 자꾸만 두리번거렸다. 제노가 그런 그의 머리통을 꾹 잡고 귓가에 속삭였다. 야 처음인 거 티 내지마. 웬일로 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듣는 일이 별로 없는데 본인도 심각한 걸 알기는 했나보다. 그도 그럴 게 이 사람들은 전부 둘을 스물 여덟 아홉으로 알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도 아니고, 다른 회사에서 이직한 걸로까지 되어있는 데다가 따지고 보면 하나의 캐릭터로 연기 중인데 그 캐릭터에서 벗어났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지성 씨, 술 잘 마시네."

  "아이, 아니에요. 저 완전 취했어요."

 

  술 한 번 안 마셔봤다더니 지성은 생각보다 잘 마셨다. 주변에서 자꾸만 먹이려는 거 거절도 적당히 하고. 제노는 혹시나 실수할까봐, 그리고 운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물만 들이켰다. 그렇게 술을 거절하던 지성도 결국은 얼굴이 시뻘개져서 자꾸만 헤프게 웃었다. 평소에도 워낙 툭하면 웃으니 구분이 잘 안 갔지만 헛손질하는 거 보고 금방 알아챘다.

 

  "그만 마셔요."

 

  이 회사의의 직속 선배로서 존대를 썼다. 술잔 뺏어가려는 손길을 휙 피한 지성은 제노에게 또 메롱했다. 황당한 것보다 당황스러웠다. 여기가 사적인 곳도 아니고 얘 진짜 취했나. 하지만 같이 마시던 이들도 이미 술이 거하게 들어간 뒤라 큰 눈치는 못챘다.

 

   "지성 씨 많이 취했나봐요. 귀엽다, 진짜."

 

  이런 상황에서까지 귀여움을 받는 거 보면. 제노는 어색하게 웃었다. 다들 저들끼리 떠들거나 이 부장의 지루한 말을 듣느라 제노에게 큰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제노도 금방 타겟이 되었다. 술 한 잔 쭉 들이키라는 리얼 찐 꼰대들의 말. 제노가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취해버린 지성까지 합세한 덕에 마셔버렸다. 그리고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한 마디. 좆됐네.

  한 번 마시니 자꾸 들어가는 게 술이다. 술이 달게 느껴지면 그날은 그냥 정말 좆된거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제노는 현재 좆되어가는 중이다. 심지어 간만에 마시니 금방 취할 거 같기도 하고. 정말 좆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기 직전에 관뒀다. 때마침 떠들던 화제가 옆자리 장 대리에게 넘어갔다.

 

  "연우 씨가 전에 컬러리스라고 했었나."

 

  새로운 단어에 제노가 안주 먹으며 장 대리를 바라봤다. 장 대리는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것을 이 부장이 말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제노는 그 말을 곰곰히 씹었다. 제노의 세계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니. 무채색의 세상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어쩐지 장 대리가 안주를 입에 넣지 않는다 싶었다. 장 대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다시 퍼졌다. 한 3년 전까지는 완전히 색을 구분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당시의 애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점차 세상이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는 그런 스토리. 현재는 그 사람과 헤어진 뒤로 혼자 지내느라 다시 색을 잃었다고 했다.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아 제노는 인상을 찌푸렸다. 

  앞에 놓인 안주만 집어먹다가 그 마저도 손을 내렸다. 사유는 박지성. 화장실 간다고 일어서더니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걸 보고 단숨에 자리에 일어나서 따라갔다. 혹시나 지성이 사라지면 큰일이니까. 

 

  밖에서 바람 좀 쐬다가 일어설 계획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모텔이었다. 어차피 운전은 할 수 없는 상황인 거 알았다. 대리 불렀다가 좆될 일 있나. 그런 생각들 하면서 지성을 붙잡고 걷다 보니 모텔이었다. 때마침 대포폰에 전화가 울렸렸다. 이 부장이었다. 지성이 너무 취해 대리 불러서 먼저 들어가 보겠다는 거짓말을 능숙하게 했다. 거의 업히다시피 끌고 데려온 지성은 이미 눈을 감은 상태였다. 침대에 눕히고 나니 곧바로 정 회장에게도 전화가 걸려왔고. 욕 좀 먹었다. 네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 똑바로 알라는 둥. 하기사 누가 남의 회사에 스파이로 가 술 처마고 놀겠는가. 잠깐 미쳤었지. 박지성 때문에. 아무런 근심 없이 침대에 누워진 채 자는 지성을 괜히 노려봤다.

  술이나 깰겸 씻고 나왔더니 지성은 그새 침대 헤드에 기대 멍때리는 중이었다.

 

  "일어났냐? 너 때문에 진짜."

  "혀엉. 나 물 좀……."

  "……엉?"

  "무울……."

  "네가 갖다 먹어."

  "나 머리 아픈데 갖다 주면 안 돼요?"

 

  결국 한숨 쉬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줬다. 침대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 그것도 귀찮다고. 수건으로 머리 털털 말리며 침대에 앉았다. 지성은 냉수를 꿀꺽꿀꺽 잘도 삼켰다. 그 한 병을 쭉 들이키고도 정신이 안 드는지 어지럽다며 제노에게 기댔다. 그러다 곧 제노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불편하니까 똑바로 좀 누워봐요. 뻔뻔한 저 말투에 기가 찼지만 피곤한 탓에 금방 또 바로 누웠다.

 

  "절대 너 편하라고 이러는 거 아니다."

 

  한 마디 덧붙였지만 지성은 들은 체도 안 했다. 제노한테 기대서 인형 마냥 팔과 다리로 꽉 끌어안을 뿐이었다. 불편한 자세였지만 제노는 굳이 밀어내지 않았다. 조금 신기했다. 같이 자는 건 처음이라. 밤을 보낸 적은 많지만 항상 일하느라, 뒤처리 하느라 밤을 보냈지 이렇게 침대에 꼭 붙어 있던 적은 처음이었다. 괜히 침을 꿀꺽 삼켰다. 가까운 거리 탓에 지성이 숨쉬는 것마저 느껴졌다. 그새 또 잠들었나.

 

  "또 자?"

  "……자야하는 시간인데요."

 

  지성은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대답했다. 웅얼거리는 투를 들으니 확실히 잠에 취해있는 것 같았다. 잠인지 술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만 제노도 머리 말리는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잠이 안 와 한참이나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성이 말을 걸어왔다.

 

  "형 있잖아요."

  "엉."

  "형 몇 살이에요?"

  "엉?"

 

  다소 황당한 질문에 제노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지금껏 같이 살아놓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도 신분 위조하며 살다보니 헷갈리기 시작한 건지. 

 

  "스물 다섯이지."

  "진짜로?"

  "너 취했어?"

  "아니거든요."

  "근데 왜 물어."

 

  지성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뭐야, 싱겁게. 슬쩍 옆을 내려다봤지만 지성의 뒤통수만 보일 뿐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볼 수가 없어 다시 잠든 건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지성아. 나직하게 이름을 부르자 지성이 다시 느릿하게 대답했다.

 

  "응."

  "나이는 갑자기 왜 물어봐. 설마 내가 가짜일까봐?"

  "모르죠……. 거짓말일 수도 있는 거고."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왜 해. 어디다 써먹으려고. 야, 넌 몇 살이야."

  "나 스물 하나죠."

  "너 그거 거짓말이야?"

 

  몸을 뒤척거리더니 고개를 올려 제노와 눈을 마주쳤다. 잠과 술에 취해 눈은 반쯤 감겨있었다. 거의 잘듯이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았지만 지성은 눈에 힘을 주고 제노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 얼굴을 보자 제노가 바람 빠지게 웃는 소리를 냈다.

 

  "거 봐. 지도 그러면서."

 

  제노의 대답을 듣고 지성이 편하게 그의 옆으로 누웠다. 그냥 그대로 있어도 되는데. 제노가 중얼거리듯이 말했지만 지성은 못 들은 체였다. 어느새 잠도 다 깨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정적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어색한 공기가 몸을 짓눌렀다. 잠이라도 자야 할 텐데. 눈을 감아도 잠에는 안 들고. 글렀다.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지성이 등을 돌렸다. 같이 자는 게 불편한가. 그의 등을 슬쩍 바라본 제노는 입을 앙 다물었다. 자야겠다, 얼른. 하지만 지성은 말을 걸어왔다.

 

  "형 있잖아요."

  "엉."

  "나 요즘 되게 막, 좋아요."

  "갑자기?"

  "요즘 우리 대표님이 꽤 오래 오더 안 내리니까 마음이 편하다고 해야하나. 막, 막 그래요, 약간. 그냥 이렇게 계속 있고 싶고. 눈치 보기도 싫고."

 

  뒤를 돈 채 횡설수설하는 탓에 제노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뭐라는 거야. 귀에 들어온 문장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며칠 전부터 해온 일이 몇 개나 되는데. 조금 이상했지만 대충 넘겼다. 피곤한가보네. 좋은 게 좋은 거다. 술 처음 마셔봤다니까 이럴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술 마시는 것도 너무 기분 좋아요. 세상이 같이 도니까 나만 이상한 건 아닌 거 같고. 아, 나만 미친 게 아니구나."

  "지성아. 자자. 이제 자야지."

  "형이랑 이렇게 있는 것도 좋고."

  "너 나 너무 좋아한다."

 

  장난으로 한 말이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괜히 뻘쭘해져 지성의 허리를 쿡 찔렀다. 지성이 금방 반응을 했다. 고개를 휙 돌려 째려보는 눈길이 우스웠다.

 

  "사람 민망하게. 대답 좀 해줄래?"

  "형."

  "엉."

  "이리와봐요."

  "어딜?"

 

  순식간에 지성이 제노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겼다. 가까워진 거리에 제노는 놀라 눈이 동그래졌지만 지성은 여전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금방이라도 얼굴이 붙어버릴 거리에서 지성은 느릿하게 눈을 꿈뻑이며 말을 이었다. 저 요즘 좀 큰일난 거 같기도 하거든요. 그 한 마디와 함께 입술이 붙었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광경이 달랐다. 익숙한 집이 아닌 새로운 모텔의 낯선 시야가 들어왔다. 정신을 차리는 동안 옆에 있어야 할 지성이 사라졌다는 게 보였다. 얘 없어지면 안 되는데. 벌떡 일어난 제노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지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정신이 확 들어 휴대폰부터 찾는데 지성이 나타났다.

 

  "형……."

  "아, 깜짝이야. 너 어디 사라진 줄 알았잖아."

 

  화장실에서 나온 지성은 어딘가 불안한 표정이었다. 샤워라도 한 건지 머리는 물로 잔뜩 젖은 상태인 게 비에 쫄딱 맞은 생쥐같았다. 그의 걱정도 하기 전에 정 회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갑작스럽게 내려진 오더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전히 넋을 놓은 채 그 앞에 서있는 지성의 어깨를 툭 치니 금방 화들짝 놀랐다.

 

  "너 어디 아파?"

  "아니, 아니 그냥 좀 이상해서요."

  "뭐가?"

  "아니에요. 형 얼른 씻고 나와요, 일단. 회장님 전화?"

  고개 대충 끄덕이고 지성은 더이상 대화를 잇지 않으려 하는 듯 보였다.

 

 

  밤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뭘 써서든 사람 금방 죽이던 놈이 어쩐지 망설이는 게 눈에 보였다. 저번부터 이상한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확실하게 사람이 바뀐 느낌. 너 뭐해? 답답한 마음에 한 소리 하니 그제야 총 겨누고 타겟의 머리를 향해 쐈다. 적응되지 않는 징그러운 모습에 제노는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렇지도 않던 지성이 몸을 돌리더니 차를 향해 달려갔다. 형 부탁해요. 그 한 마디만 남기고. 박지성이 이상했다

  잠이나 자던 평소와 달리 회사로 향하는 내내 자꾸만 밖을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너 어디 아파? 오늘 되게 이상한 거 알지."

  "아……. 좀 모르겠어요."

  "뭘 몰라. 너 되게 이상해."

 

  지성이 어색하게 웃었다. 회사에 도착해서 정민을 마주쳤다. 지성은 달려가서 안기지 않았다. 인상을 팍 찡그린 채 정민을 빤히 쳐다보다가 어색하게 웃고는 말았다. 전날의 일 때문에 정 회장에게 털렸다. 얼굴을 마주한 건 또 오랜만이라 걱정이 한가득이었더니 예상대로 화를 냈다. 자기 일에서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면 화내는 게 그였다. 지성은 그곳에서도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굴다가 처음으로 정 회장에게 맞았다. 놀란 얼굴이 보였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

 

 

  "박지성."

 

  같이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지성을 붙잡았다. 축처진 어깨가 안쓰럽긴 했다만 그건 둘째의 문제였다. 지성은 제노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상태였다.

 

  "형 제가 다음에 설명할게요. 일단 저 오늘은 쉬고 싶어요……."

  

 

  제 집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괜스레 불안했다. 손톱 몇 번 물어뜯고, 소파 앞을 혼자 거닐고, 적막한 집 안을 채우려 티비를 틀어봤지만 머릿속에 온통 지성의 생각이었다. 입을 맞춘 탓인지, 그 이후로 지성이 변해서 인지. 사실은 그 두 개가 모두 이유에 해당될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다 제노는 지성의 방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문 꼭 잠그고 절대 열어주지 않는 놈이 웬일로 잠겨있지 않았다. 들어가도 되나 고민도 잠깐 안 하고 문을 열었다.

 

  "아뇨, 아직이요."

 

  지성이 소곤거리며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노가 들어왔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 듯 보였다. 중요한 전화인지 지성의 쩔쩔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 시간에 전화? 의문이 생겼지만 더 이상 생각하는 건 관뒀다. 문앞에서 지성이 끊기만을 기다렸으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잠자코 기다리다 결국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지성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아직, 아직 때가 아니에요. 지금은 이제노랑 나가있는 상태라……."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는 채 제 이름을 들었다. 것도 호칭 하나 안 붙인 딱딱한 이름 세 글자. 움직임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지성은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으로 뭔가를 찾는 중이었다. 제노의 머릿속에 안 좋은, 최악의 상상만이 지나갔다. 제노가 알기로 지성은 이곳을 제외한 다른 이들과의 연락을 안 한다. 그도 그럴 게 우연히 뒷골목에서 칼로 누군가를 찌르던 지성을, 정 회장이 발견하고 데려왔으니. 사람 왜 죽였냐 물었더니 야매란다. 야매. 어차피 가족 없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라도 어떻게 벌어보려 돈 받고 사람 죽인다고 했다. 아무런 두려움도, 겁도 없었다. 그 검붉은 피가 터져나가는 것을 봐도 지성은 멀쩡했다. 정 회장의 제안에 지성은 바로 회사로 들어오게 됐다. 다른 뒷손들과는 모두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그랬던 지성이 누군가와 전화를 한다?

  정 회장은 아닐 것이었다. 그는 무슨 일이든 지성 대신 제노에게 연락을 했다. 아무리 지성을 아낀대도 제노가 회사에 바친 세월이 몇 년이나 되었다. 정민은 바로 옆 방에 있으니 굳이 전화를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아무리 친하다지만 그렇게까지 각별한 사이는 아닐 텐데. 그제야 방안이 제대로 보였다. 처음으로 들어온 박지성의 방 안. 처음 보는 물건들로 가득하고 온갖 장비가 올려진 방 안. 언뜻 지나가며 봤을 때는 깨끗했는데. 제노가 방 안으로 발을 뻗었다.

 

  "지성아."

 

  그 소리에 지성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았다. 허둥지둥거리며 노트북을 닫고 급하게 발로 아래에 방치된 장비들을 밀어넣는게 우스웠다.

 

  "갑자기 들어오면 어떡해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성이 말을 걸었으나 제노의 시선은 지성의 뒤에 머물러있었다.

 

  "무슨 일 있어?"

 

  물어보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제노도 결국 다른 방법을 택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들릴 것만 같았다. 거짓말을 못하는 눈동자는 여전히 뒤를 관찰하고 있자 지성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한참이나 이어진 정적 끝에 지성이 입을 열었다.

 

  "형, 사실은……."

  "아픈 곳 있으면 말을 해. 같이 일하는데 혼자 그러지 말고."

 

  지성이 우물쭈물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알았어요. 안 아프니까 얼른 들어가봐요. 그렇게 중얼거리면 뭐라는지 제대로 안 들린다는 것도 모른 채 지성은 그랬다. 어차피 제노도 지성의 말을 그렇게 제대로 들을 생각은 없었다. 그 머리통을 내려보다 제노는 장난스레 꾹 눌렀다. 나 간다. 일찍 자. 내일 일 나가니까. 그 말 하며 뒤를 돌았지만 갑작스레 지성에게 옷이 붙잡혔다. 영문을 모른다는 듯 제노가 뒤를 돌았지만 지성은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뭔데. 너 어디 아픈 거 아니면 다른 말 하지마."

  "형."

  "어."

  "나 아파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들어 제노와 눈을 마주쳤다. 지성의 울 거 같은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그 표정에 제노는 저도 모르게 지성을 꽉 안아버렸다. 왜 그래, 왜.

 

 

 

 

  형, 저 색이 보여요. 그 한 마디에 머리가 핑핑 돌았다.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한참이나 지성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차분하게 말을 잇는 지성으로 인해 점점 정신을 차렸다. 회식 날 들었었다. 컬러리스의 존재가 생각보다 주변에 있긴 하겠구나. 말을 안 하면 알아차리기 어려우니 몰랐다. 이런 식으로 고백을 들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던 얘기는 안 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고백이었다.

  형이랑 키스하고 다음 날, 눈을 뜨니까 처음 보는 색이 눈에 들어왔어요. 고개를 돌리니까 형의 얼굴이 보였어요. 분명히 캄캄하고 어둡던 앞이 다양해졌어요. 형 그 기분 알아요? 평생 눈 감고 살다가 눈을 뜬 기분이었어요. 

  지성의 고백을 듣는 동안 제노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말을 다 마치고 지성이 눈물을 흘렸다. 제노는 그를 안아주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형 그래서 저 너무 무서워요. 사람들 죽일 때 피 그거, 그냥 음료수랑 똑같은 색이었거든요. 냄새는 참으면 그만인데 어제부터 갑자기 피, 그거 색이 보이잖아요. 나는 그게 그렇게 무섭고 징그러운 색인지 지금 알았어요.

  소리내서 울지도 못하고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말하는 지성을 보고 제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럴 애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러고 살았나. 

 

 

  그 뒤로 같이 일을 나가서 제노가 대신했다. 지성은 뒤에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성이 그날 시선 뒤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이미 잊었다. 제노의 머릿속에는 다른 게 남았다. 색이 보인다는 거. 입을 맞춘 후로 그렇게 됐다는 거. 그 두 문장만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박지성이, 좋아하네. 나를. 스스로에 대한 감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지성의 감정부터 알아차리자 금방 제 감정을 받아들이기도 쉬웠다. 죽이는 거,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뒤처리를 하는 것보다야 나은 일이었다. 그래서 다 잘 될 줄 알았다. 지성이 입을 다물고 저가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르게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지나갈 수 있었다.

  지성은 제노에게 고백한 뒤로 마음이 한결 편해졌는지 전의 그 상태로 돌아왔다. 밝고 귀여움 잔뜩 받는 지성. 마지막 오더 받은 이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암묵적인 휴가였다. 지성은 늘 그랬던 것처럼 제 방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다시 철저하게 문을 잠그기도 했다. 제노는 더한 의심을 접었다. 때때로 성이 그 방에서 제 방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형, 저 이거 빌려도 돼요? 은근히 다른 의도를 가진 척 들어와서 눈 깜빡하고 보면 제노의 침대에 누워있고, 정신 차린 뒤에는 이미 진하게 입을 맞추곤 했다.

  전에 지성이 제게 했던 말들이 제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형이랑 그냥 이렇게 계속 살고 싶어요. 이제야 제노도 그 말에 공감이 갔다. 다른 변수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늘 바람과 현실은 달랐다. 갑작스럽게 정 회장이 제노를 불러냈다. 지성을 두고 혼자 오라는 문자만 받았다. 간만에 들어온 회사에 잔뜩 긴장을 안은 채로 회장이 있는 곳에 들어섰다.

 

  "제노야. 알고 있었니?"

 

  마주하자마자 내던진 한 마디에 제노는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뭐를요? 회장은 손짓 하나로 제노를 불렀다. 그는 천천히 회장에게로 걸어갔다. 책상에 여러 문서들이 펼쳐졌다. 사진과 긴 대본같은 무언가. 그리고 그 사진 속에는 지성의 얼굴이 있었다.

 

  "……뭐예요?"

  "들어봐, 네가. 이게 뭘지."

 

  회장이 책상 위로 휴대폰 하나를 던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책상 위로 떨어진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스크린 안에는 녹음 화면이 떠있었다. 좋지 않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주먹을 꽉 쥐었다 피며 떨리는 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듣지 못하고 폰을 내려놨다. 의심만 하던 게 사실임을 확인 받아버렸다.

 

  "이거 박지성 맞아요? 정말, 걔라고요?"

  "보고도 모르겠어? 박지성 아니면 이 얼굴이 누구겠니. 제노야."

 

  제노가 말을 잃은 동안 회장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걔 일 년동안 여기 기생충처럼 붙어서 다 불었더라. 어디서 그렇게 생쥐처럼 붙은 건지 임 팀장 유에스비도 털어간 거 정민이가 발견했어.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인데 무작정 다 훔쳐가려 하니 그렇게 들킨 거지. 회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귀에 박히지 않았다. 배신감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박지성 걔 곧 죽겠네. 생각이 듦과 동시에 회장이 지시했다. 처리해. 제노는 그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고개만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달려가며 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성은 받지 않았다. 마음이 자꾸만 급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정민이, 박지성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운전을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게 숙소로 도착했다. 그새 누군가 지성을 찾아갔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마구 들었다. 따지고 보면 박지성을 죽여야 하는 게 마땅한 사실이었다. 함께 한 세월은 지성보다 정 회장과, 이 회사와 더 오래였지만 어째서 지성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더 앞서는지 제노는 알 수 없었다. 지성의 문을 급하게 두드렸다. 또 문이 잠겼다. 불안한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지성아. 문 열어봐, 박지성."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으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설마 벌써?

  "형?"

 

  다행히 문이 열렸다. 몇 초의 시간이 엉겹처럼 느껴졌다. 또 무언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지 지성은 살짝만 문틈을 벌렸다. 제노가 급하게 지성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형 뭐해요. 지성이 그런 제노를 꽉 잡으며 막으려 했지만 그의 힘을 말릴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아래로 내던졌다. 증거를 없애려고. 더이상의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기 위해. 지성을 위해, 함께 한 세월의 회사를 위해.

 

  "뭐하냐고요, 형. 제노 형! 형 미쳤어요?"

 

  처음으로 지성이 소리를 질렀다. 하던 행동을 멈추고 지성을 노려봤다. 그 눈길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지만 지성은 애써 그 시선을 피하며 제노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제노가 선수를 쳤다.

 

  "도망 가."

  "네?"

  "가. 아냐. 숨어. 일단 숨자, 지성아. 너 왜 그랬어. 지성아, 숨어. 너 죽어."

 

  문장이 제대로 완성되지를 않고 자꾸만 끊겼다. 그 다급한 소리에 지성의 눈빛이 흔들렸다. 정지된 채였다. 아직 시간이 있을 것이다. 따로 부른 걸 봐서는 셋 이외에는 아무도 지성의 정체를 모를 것이었다. 아직 정민의 행방을 알지 못했지만, 설마 걔가. 고장난 것처럼 삐걱거리던 지성이  제노의 손을 꽉 잡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형."

  "지성아."

  "나 죽어요? 왜요? 나 들켰어요?"

 

  목소리에 울음이 가득 배어있었다. 제노가 지성의 손을 놓고 어깨를 꽉 붙들었다. 아니야, 지성아. 너 안 죽을 거야. 너 잘 도망갈 수 있어. 지성은 자꾸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자신 없어요, 형. 형 미안해요. 형 속여서 미안해요. 결국에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자꾸만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그의 어깨를 꽉 쥐었다 놓으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여긴 내가 알아서 정리할게. 사실 잘 몰라. 나도 모르겠어. 누가 찾아올 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여기는 위험해. 일단 여기 나가고, 최대한 눈에 안 띄게 숨어 있다가 너 원래 있던 곳으로 가. 거기서 너 여기로 보낸 거잖아."

 

  지성의 고개가 미약하게 흔들렸다. 처음 보는 휴대폰 하나만 손에 쥐고 방문을 나섰다. 형, 형 살아야 돼요. 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형 때문에 내 세상이 바뀐 거, 너무……. 문장을 미처 완성하기 전에 지성은 현관을 열고 나섰다. 그게 문제였다. 문 앞에는 정민이 서있었다.

 

  "너, 언제……."

 

  순식간이었다. 그를 붙잡기도 전에 정민이 오른손에 쥔 칼로 지성의 배를 찔렀다.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라 아무런 대처를 할 틈이 없었다. 지성이 찔렸다. 똑같이 누군가를 찌르던 그 손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형, 형……."

 

  입을 벌리며 힘겹게 뒷말을 이으려 했지만 정민이 손에 힘을 쥐었다. 지성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토할 듯이 쿨럭거리는 입에서는 붉은 피가 터져나왔다. 다시 한 번, 정민이 칼을 빼고 다시 찌르려 움직이자 제노가 그의 손을 붙들었다.

 

  "너, 미쳤어?"

  "제노야. 미친 건 너야. 손 놔."

  "야. 얘 박지성이야. 네가 그렇게 아끼고 감싸고 돌던 박지성인데, 너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해?"

 

  정민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제노를 바라봤다. 이해 못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정민의 손에 든 칼을 낚아채 집안으로 내던졌다. 문을 타고 힘겹게 기대고 있던 지성의 다리마저 무너졌다.

 

  "지성아, 박지성, 괜찮아? 정신 좀 차려봐. 지성아."

 

  목소리가 떨렸지만 피가 터져나오는 부분을 옷으로 지혈했다.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발버둥이라도 치려는 심정이었다. 지성아. 한 가닥의 희망을 붙잡고 지성의 얼굴을 올려다봤지만 지성은 미동이 없었다. 죽었다. 다른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지성아. 다시 한 번 부르며 지성의 팔을 잡고 흔들었지만 그대로 흔들린 지성은 옆으로 쓰러졌다. 끝이었다.

 

  "정신 차리자, 제노야. 걔 너 죽이려고 왔대. 너 내가 보낸 거 다 들어는 봤어? 걔 처음부터 네가 목적이었다고. 너 죽이고 그쪽에서 아예 우리 회사 칠 생각이었대, 제노야."

  "아니야."

  "뭐가 아니야. 너 진짜 왜 그러냐, 어?"

 

  정민이 제노를 한심하게 내려다봤다. 어느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대로 복사했던 녹음본을 틀었다. 생생한 지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노는 지성의 눈을 감겨줬다. 그의 마지막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지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안다. 알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녹음본에서 흘러나오는 저 모든 말. 모든 계획. 구체적이고 생생한 지성의 목소리와 어딘가 낯익은 누군가의 목소리.

 

  "지성이 어디서 왔는 지 알아? 너 임태진 기억하지. 네가 2년 전에 친 그 새끼, 걔 따가리야, 지성이가. 거기서 이 갈고 보낸 거라고. 너랑 우리, 다 치려고. 근데 너는 지금 살리긴 누구를 살려. 내가 얘 안 죽였으면 박지성 거기 돌아가서."

 

  정민이 더 이상 말을 잇지도 못하게 주먹이 나갔다. 한 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죽은 지성의 곁에서 분이 풀릴 때까지, 몇 번이고 정민의 입을 치고 손을 쳤다. 그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나서야 손을 내렸다.

 

 

 

  지성을 차에 태우고 한참을 달렸다. 회사로 돌아가면 죽든가 죽일 때까지 맞든가 둘 중 하나일 터였다. 미래는 아무렴 상관이 없었다. 가장 먼 곳으로 와 혼자만의 장례를 치뤄줬다. 유골함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짧게 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지나갔다. 바다 한 번만 더 갔다 올걸. 흑색 바다가 아닌 푸른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밝고 예쁜 밤바다의 광경을, 눈에 담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늦었다. 늦었다는 것을 알아서 힘이 빠졌다.

  차에서 급하게 쓴 편지를 끼워서 넣었다. 못 읽겠지. 못 읽겠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 납골당을 뒤로 하고 나오며 꺼뒀던 폰을 켰다. 기다렸다는 듯 온갖 연락이 들어온 게 보였다. 대부분이 정민이었고 몇 개는 정 회장이었다. 미련 없이 폰을 바닥으로 던졌다. 차에 올라타 타이어로 휴대폰을 짓밟고 자리를 떴다.

    JENSUNG 1st Collab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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