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VIEW
목도리









쓰면서 이대로 괜찮나 불안했습니다.
얼마나 지우고 다시 쓰길 반복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때문에 마감 연장을 했지만... 너그럽게 봐주신 주최자 님께 감사드립니다.
제노 시점으로 글을 쓰면서 지성이는 왜....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같은 생각을 하실..까요?
여유가 생기면 지성이 시점으로 글을 써보고 싶네요.
이렇게 멋진 합작을 열어주신 주최자 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읽어주신 분들도 감사합니다!
사랑니
이옥모
지성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억울하고 화가 났다. 예상에도 없던 외롭디 외로운 짝사랑을 하는 것도 서러운데 예고도 없이 사랑니가 나서 두 배로 신경 쓰이게 만들더니 뽑고 나서도 잔뜩 고통을 안겨준다. 봉합된 잇몸을 차마 혀로 눌러볼 생각도 안 들었다. 어째 뽑기 전보다 뺨이 더 부푼단 생각이 들어 더더욱 억울했다. 짝사랑이건 사랑니건 이름에 둘 다 사랑이 들어가는데 달콤하긴커녕 따갑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지성을 서럽게 만들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오기 전까지 지성은 왼쪽 뺨이 너무 욱신거려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동아리 캠프 회의를 위해 모인 날, 선배들이 사준 피자를 마지못해 우물거렸는데 어금니가 서로 맞부딪히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우리 찌송이 어떡하냐며 호들갑 떠는 나재민을 뒤로하고 슬쩍 제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 너
─ …….
─ 볼에 뭐 물고 있어? 엄청 부었어.
열일곱, 한참 외모에 신경 쓸 나이다. 더군다나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다면 더욱이 민감해질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성은 아침잠을 포기하고 매일 냉동실에 넣어둔 숟가락으로 눈 주변을 꾹꾹 한참을 누른 뒤에야 등교를 하곤 했다. 동아리를 가기 전에는 꼭 화장실에 들려 괜히 머리도 만져보고 치아 상태도 살피는게 일상이었다.
그런 와중에 짝사랑하던 상대에게 들은 말이 부었단 말이라니. 지성은 동아리를 마치고 곧바로 집에 가 사랑니가 아파 신경 쓰여 공부를 못 하겠다며 엄마를 졸라 치과를 예약했다.
"아들, 금요일은 어때?"
"나 그때 동아리에서 캠프 가잖아. 목요일로 해주세요."
생긋 웃으며 부었다고 말한 그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고 너무 얄밉게 느껴져 지성은 이불을 퍽퍽 발로 찼다.
사랑니는 왜 하필 이름도 사랑니야? 사랑니 이것도 다 이제노 때문 아니야? 나 이제까지 충치 한 번을 안 난 사람인데?
전혀 연관성 없는 말을 속으로 씹으며 지성은 제노를 원망했다. 지금 볼부터 턱까지 부푼게 꼭 모두 제노의 탓이라 여겨졌다. 애초에 제노가 자신에게 볼이 부었단 말을 하지 않았다면 지성은 치과에 가서 사랑니를 뽑지 않았을 거고 마취가 풀려 아프고 서러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더 시간을 돌려 동아리 소개를 하던 날 제노가 자신을 보고 웃지만 않았다면 애초에 지성이 제노에게 반해 사랑니 따위를 신경 쓰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
엉덩이가 맨들맨들하게 닳았던 중학교 교복을 벗고 빳빳하게 다림질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지성은 허리를 둥글게 말고 있었다. 4월의 교실은 너무 따뜻했고 오늘은 또 수요일이라 하이라이스가 나와서 영양사님 눈치를 보며 두 그릇이나 먹은 터라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분명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담임 선생님이 무어라 설명을 하고 나갔던 것 같은데 지성은 조느라 그마저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정신없이 머리로 노를 젓다가 이마로 책상을 두어 번 쿵 쿵 박고서야 지성은 부스스 눈을 떠 교실을 쭈욱 둘러봤다. 흰색 명찰을 단 사람들이 교탁 앞에 일렬로 서서 잘 해줄게를 외치는 모습에 내가 지금 프로포즈 현장을 보는건가 어리둥절 하다가 짝꿍 옆구리를 쿡 찔렀다.
"……."
"…죄송합니다.“
분명 살짝만 찔러 고개를 돌리게 할 생각이었는데 찔린 당사자에게는 그게 아니었는지 돌고래 같은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우당탕 일어나는 엄청난 행동을 보였다. 큰 키 때문에 맨 뒤에 앉아있던 둘에게 시선이 단번에 집중되자 지성은 순식간에 귀까지 빨개졌다.
지성은 책상에 어깨를 둥글게 말아 납싹 엎드리다 짝꿍 종천러의 째림에 머쓱하게 미안하다고 입 모양만 오물댔다.
─ 박지성 나 간지럼 잘 탄다고 이 바보야
─ 그래서 왜 찌른건데
한참 지성을 째리던 천러는 눈을 거두고 공책을 쭈욱 찢어 재빠르게 무언갈 적어 내밀었다. 얘는 한국어도 진짜 잘 쓰네, 따위를 생각하던 지성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천러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서야 답을 쓰기 위해 허겁지겁 펜을 찾았다. 두 번이나 떨어트린 끝에 펜을 쥔 지성은 답을 삐뚤빼뚤 적어내릴 수 있었다.
─ 미안 ㅎ 몰랐어 근데 우리 지금 뭐하는거야
─ 박지성 너 진짜 글씨 못 쓴다 지렁이랑 친구야?
─ 그리고 물어볼 때는 물음표 쓰는거야 이 바보야
이번에는 지성이 천러를 째려봤다. 천러는 꼬집힌 반죽 마냥 노려 보는 지성을 가리키며 한참을 꺽꺽 소리 없이 웃더니 선배들이 동아리 소개 중이잖아 라고 입모양으로 뻐끔댔다. 동아리? 우리 동아리 활동도 해? 고등학생이? 머리 위로 수만가지 물음표를 띄울 때 쯤 반장이 마지막으로 동아리 회장들의 인사를 끝으로 지원하고 싶은 동아리를 나눠준 용지에 체크 해서 앞으로 제출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오바, 하나도 안 들었는데
애초에 지성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할 계획 따위 없었지만 그래도 이상한 동아리에 얼떨결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이럴 때 믿어야 하는건? 바로 삘이다. F E E L
지성은 믿었다. 이름 하나로 자신을 끌어당길 그런 동아리가 있을거라고. 원래 사람은 그런 알 수 없는 끌림이 오길 믿으면서 사는거잖아? 그래서 지성은 이름이라도 잘 들어야겠단 다짐으로 허리를 쭉 폈다.
"우주 신비 탐사 동아리 이제노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던 하얀 명찰과 눈이 마주쳤다.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시선을 피할까 말까를 수 없이 고민하던 중 눈을 휘며 씩 웃는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오바, 진짜 오바다.
동아리 선택에 대한 삘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꽂혔단 생각이 들었다.
─
1지망 부터 3지망까지 적힌 지원서에 지성은 모두 <우주 신비 탐사 동아리> 를 적어서 제출 했다. 그게 벌써 세 달도 더 지난 일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지성은 이렇다 할 관계 발전을 갖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하리 만치 제노는 지성에게 무심하게 굴었다. 지성은 비록 낯을 심하게 가려도 어딜 가든 귀여움을 받는 편이었다. 이번 동아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다른 동아리원들이 지성을 귀여워하며
"근데 지성이 너무 귀엽지 않냐?"
라고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제노는 굳이 대답했다.
"지성이 보단 천러가 더 귀엽지."
정말 굳이.
그러다 지성이 입을 쭉 내밀고 토라진 티를 내면 다시 생글거리는 제노와 마주하는 것이었다.
"입을 왜 내밀어. 넌 너가 귀엽다 생각하는 거야?"
저 시도 때도 없는 눈웃음을 지으며 하는 말을 아주 주먹을 꽉 쥐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성은 원래 짝사랑하는 상대를 한 대 때리고 싶은게 정상인지 진지하게 고민까지 하는 상황에 도달하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시간이 흘러 방학까지 했지만 지성은 여전히 제노가 좋았다. 동아리 단톡방에 아무도 웃음이 나지 않는 터무니 없는 말장난을 쳐도 지성은 꿋꿋하게 배를 잡고 깔깔 웃는 햄스터 이모티콘을 보낼 정도로 제노를 좋아했다. 방학이 되어 지성은 동아리를 핑계로 제노를 만날 기회가 적어진게 마냥 아쉽게 다가왔고 그래서 더욱이 동아리 캠프 날을 기다렸다.
캠프에 대한 의견을 낸 것은 서기지만 단 한 번도 펜을 잡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이동혁이었다.
"이게 말이 돼?"
"또 뭐가 쓸대 없는 말 할 시간에 가위질 좀 해봐. 동아리 신문 오늘 안에 제출 못 하면 우리 동아리방 뺏긴다고."
"명색이 우주 동아린데 외계인을 봤어, UFO를 포착했어 뭘 했어."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인준의 핀잔에도 동혁은 아에 자리에서 일어나 열변을 토했다.
"외계인 인터뷰도 못 하고 UFO 포착도 못 하면 적어도 별은 봐야하지 않겠냐."
"별 보는 건 쉬운줄 알아? 이 도시 전체에 정전이 오길 기도라도 하던가. 지금은 하늘 올려다 봐도 잘 봐야 인공위성이야."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이제 곧 방학인데 계곡이나 바다 가서 수박도 먹고! 물놀이도 하고! 고기 좀 먹다가 별 보자 이거지. 아, 황인준 나랑 진짜 안 맞아."
"동혁이 형, 그냥 물장난 하고 싶은거 아냐?"
"넌 또 말을 왜 그릏게 하냐. 형 증말 섭섭하다."
애저녁에 가위질과 글 쓰기에 부적합 하단 판정을 받은 지성은 오려진 색종이에 풀칠을 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계곡? 별? 진짜 마지막으로 별을 본게 언제였지?
지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푸슬푸슬 웃다 제노와 눈이 마주쳤다. 그대로 표정이 굳어 뽈뽈 당황하고 있는 지성을 제노는 시선도 피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계곡이 좋아, 바다가 좋아?"
투닥거리던 인준과 동혁도 재밌다며 몸을 좌우로 흔들며 혼자 웃는 천러도 절대 말릴 생각 없어보이는 재민도 모두 하던 행동을 멈추고 제노의 시선을 따라 지성을 바라봤다.
이렇게 시선이 집중 될 줄 몰랐던 지성은 손에 색종이가 붙은 채로 어정쩡하게 굳어 있다 계곡…? 한 마디를 뱉었고 그럼 계곡 가지 뭐, 라는 제노의 대답에 동혁은 환호했다.
"아이고 우리 회장님이 가자면 가야죠. 너네들 다 들었지? 안 그래도 사람 적은데 불참하면 배신이다, 이건."
"우우우 박지성만 의견만 듣는다. 이건 탄압이다. 우우우"
"종천러, 탄압은 또 어디서 배웠어. 너 이동혁한테 배웠지."
"쟤 이제 찐으로 한국인 됐다니까?"
"찐? 찐은 뭐야?"
"찐이 진짜란 뜻이야."
아, 애한테 급식체 알려주지 말라고. 우리가 급식인데 어떡해.
투닥거리는 인준과 동혁을 뒤로하고 지성은 괜히 고개가 책상에 닿도록 푹 숙인채 풀칠만 열심히 했다. 아직도 제노가 자신을 계속 바라보는게 느껴져서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 거기 풀칠하면 안 되는데."
"헉."
지금 풀을 색종이에 문지르는지 책상에 문지르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상태에서 제노가 말을 걸자 지성은 또 한 번 더 굳어버렸다.
"아, 박지성 진짜 똥손. 종이 다시 가지러 가야 되잖아. 따라와"
천러가 지성을 잡아 끌자 지성은 제노를 힐끔힐끔 곁눈질로 바라보며 따라나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노는 다시 가위를 잡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
판을 만든 동혁이 자신의 외삼촌이 가평에서 펜션을 한다고 운을 띄우자 뒷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날짜를 정하고 회비를 걷었다. 쌀이나 쌈장같이 집에서 갖고 올 수 있는 건 조금씩 양을 나눠서 들고 오기로 결정했다.
남 몰래 책상 위 탁상 달력에 날짜를 셈하며 디데이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 둔 지성은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사랑니에 대한 진정한 고통은 빼고 난 뒤라는 것을
치과에 도착해 달달 떨며 많이 아픈가요? 라며 물었을 때 뺄 때는 생각보다 안 아파요, 라는 대답에 의문을 품었어야 했다. 살을 째고 사랑니를 꺼내기 위해 마취를 했을 때 아프다고 속으로 외치며 손에 난 땀을 자꾸 바지에 문지르지 않았어야 했다. 제노가 놀리건 말건 일단 캠프 전날에 사랑니를 뽑는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지성은 후회하고 후회했다.
분명 나쁘지 않았다. 지레 겁을 잔뜩 먹고 가서 그런지 마취주사는 아프긴 했어도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는 아니었고 사랑니를 빼는 과정이 소름 돋아도 그 자리에서 도망칠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히 그랬다. 사랑니를 빼고 봉합까지 한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도 내일 일찍 일어나서 얼린 숟가락을 가져다 대면 나아질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태연자약하게 치과를 나왔고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며 집 도착해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앞으로 다가올 상황은 아무것도 모른 채 주방을 뒤져 허브솔트를 꺼내며 어, 이거 고기에 뿌려서 먹으면 맛있는데 따위를 생각했다.
지성은 가방을 다 싸고 단체 카톡방에 연락을 남겼다.
─ 소금 제가 챙겼어요
─ 그리고 저 사랑니 뺌 ㅋㅋ
센스쟁이
올ㅋ 다 컸네
쏟아지는 답장을 뒤로하고 지성은 책장 밑에 있던 보드게임판까지 꺼냈다.
점심에 물놀이하면 밤에 졸려서 빨리 자려나? 보드게임 오반가? 밤에 하루종일 별만 볼 것도 아닌데….
갈팡질팡 고민하다 결국 지성은 잠궜던 가방 문을 열어 보드게임판을 넣었다. 그러고도 만족스럽지 않아 괜히 옷장 문을 열기도 하고 손톱도 깎았다. 문득 거울을 보니 앞머리가 너무 긴 것 같기도 해서 미용실을 다녀올 걸 그랬나 후회도 했다. 서랍에 넣어둔 가위를 만지작거리며 자를까 말까 고민하다 동아리 신문 만들기에서도 제외된 매직 핸드란 사실을 떠올리며 빠르게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 천러한테 라면 끓여달라 해야지. 아, 근데 내일도 붓기 안 빠지면 어떡하지. 찬물로 세수 해야하나. 오른쪽 얼굴만 보여 줘야되나. 마스크 들고 갈까.
생각만큼 아프고 무섭지 않았지만 그래도 치과에서 잔뜩 긴장을 해서 몸이 피곤했다. 그렇게 지성은 얼굴 붓기 빨리 빼는 법을 검색하다가 잠에 들었다.
─
"지성이는? 늦잠이래?"
"기차 어떡하냐? 일단 놓고 가?"
"지성 그냥 택시 타라 해. 못 가면 아쉽잖아. 물 놀이 해야지."
동혁이 전화를 끊자 우다다 질문 공세가 이뤄졌다.
"아니, 지성이 아프대."
"아프다고?!"
"어제 사랑니 뽑았다고 자랑하더니 그게 마취가 풀리고 나니까 많이 아픈가봐."
동그랗게 모인 다섯 명이 전부 입을 꾹 다물었다.
"…미룰까?"
"안 그래도 우리가 그 말 할 줄 알고 꼭 다녀오라 하더라…."
"……."
"…그래도 우리 첫 캠픈데…."
제노가 바닥에 내려놨던 가방을 고쳐 들었다.
"박지성이 우리보고 꼭 가라 했다며. 예약까지 다 했는데 돈 날리기도 아깝고, 기차 시간 다 됐으니까 일단 출발 하자."
제노의 말에 그래, 이번에 우리가 먼저 예습하는거라 하지 뭐, 천러가 맞장구를 치며 라면상자를 품에 안았다. 인준과 재민은 서로 바라보다가 동시에 지성에게 카톡을 보냈다.
─ 형이 괜히 형이겠냐. 계곡 안 위험한지 먼저 갔다 올게 임마
─ 우리 찌송이 어른이 되는 건 원래 아푼 법이징~ 그래도 많이 아푸지 말어
엉엉 우는 토끼 이모티콘을 잔뜩 보낸 재민이 앞서가는 제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이제노, 지성이가 너한테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걔가 미안할게 뭐가 있어.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그래도 애가 엉엉 울면서 전해달라는데 어떻게 안 전해줘. 나중에 빨리 나으라고 너도 연락 한 통 넣어."
"…박지성 울어?"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을 우는 법. 그 세 번 중에 한 번이 사랑니를 뽑았을 때야."
"외삼촌 언제 데릴러 오신다 했지?"
"어? 1시까지 가평역으로 오면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겠대."
볼록한 가방을 들고 다섯 명은 전부 기차에 탔다. 천러와 동혁은 같이 축구게임을 하겠다며 따로 앉고 제노와 인준, 재민은 의자를 돌려 마주보고 앉았다. 제노는 창가자리에 앉을까 고민을 하다 그냥 통로석에 앉아 거리를 두고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봤다.
─
고작 이 하나 뽑았을 뿐인데 이렇게 아프다니. 앞으로 몸을 더 아껴야겠다.
지성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딱딱하게 눈을 깜박였다. 새벽에 불을 쑤신 꼬챙이로 잇몸을 짓누르는 것 같은 통증에 눈을 뜬 지성은 왜 아프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주륵 흘렸다. 무슨 정신으로 새벽을 보낸지 흐릿했다. 어떻게 정신을 챙겨 처방 받은 약을 먹었는데 빈속에 섭취한게 또 문제였는지 속까지 메슥거려 동이 트도록 잠을 설치고 눈이 붓도록 뚝뚝 울었다.
일어날 시간이 다가오자 알람이 울리는데 동시에 지성의 머리도 울렸다.
아… 망했다….
침대에서 뒤척이는데 차마 왼쪽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었다. 왼쪽 뺨이 뜨거운 것 같고 살짝 더듬더듬 만져보니 턱이 실종 됐다. 서러워선지 아파선지도 모를 눈물이 다시 나왔다. 오바, 나 캠프 절대 못 간다. 지성은 그렇게 한참을 무감각하게 보내다가 동혁의 전화 소리에 겨우 손을 휘저어 핸드폰을 쥐게 된 것이다.
─ 박지성, 자냐?
사랑니를 뽑은 곳이 생각보다 많이 부어서 죄송한데 캠프 못 갈 것 같다는 말을 하려다가 막상 전화를 받으니 바보 같이 지각하면 설거지 다 너한테 시킬거야, 하는 제노 목소리가 생각나 지성은 울음부터 터트렸다.
─ 야, 울어? 지성아 왜 울어. 지금이라도 나와.
한참을 동혁이 달래는 소리를 듣다 좀 진정 된 지성이가장 먼저 뱉은 말은 저, 소금, 못 들고 갈 것 같아요, 였다. 그러자 동혁은 호들갑 떨면서 요즘 웰빙이 유행이잖아, 짜게 먹으면 골로간대, 건강한 신체를 가져야 별도 잘 보인다? 따위의 위로를 건냈다.
사랑니 때문에 죄송해요, 저 빼고 캠프 꼭 다녀오세요, 제노 형한테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괜찮다고 반복하는 동혁을 뒤로 전화를 끊은 지성은 다시 허탈해졌다. 고개를 돌리자 침대에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상 위에 올려둔 탁상달력이 어렴풋이 보였다. 하도 동그라미를 빨갛고 크게 그려놔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다시 꾸물꾸물 눈물이 나려던 걸 목 뒤로 넘기며 억지로 눈을 감았다.
지성은 얕게 잠든 내내 캠프에 가지 못하는 꿈을 꿨다. 준비를 다 하고 나가려는데 신발이 전부 없어진 꿈, 기차역까지 버스를 타야하는데 갑자기 승차 거부를 당하는 꿈, 몇 번의 꿈을 반복해서 겨우 약속 장소에 갔는데 이제노가 왜 왔어? 하는 꿈. 모든 꿈 마지막엔 이제노가 얄밉게 생글생글 웃고 있었기 때문에 지성은 또 눈을 뜨자마자 지겹게 울음이 났다.
그래도 하루종일 앓고 울고를 반복하니 다음날은 괜찮았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만득이 마냥 부은 것만 빼면 말이다.
지성은 엄마가 끓여두고 나간 미음을 조심조심 떠 마시며 핸드폰을 켤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밤을 새도록 화려하게 제노로 마무리되는 꿈을 꾼 지성은 일어나자마자 핸드폰 전원부터 끈 상태였다. 사랑니, 이제노, 짝사랑이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세 단어가 내내 100m 달리기를 하는 것 마냥 충분히 복잡한 지성의 마음속을 뛰어다녀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저를 쥐고 있지 않은 반대 손으로 괜시리 핸드폰을 톡톡 치다가 때마침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현관 너머는 조용했고 상태가 상태인지라 아무도 없는 척을 할까 하다가 저녁에 세탁소 사장님이 옷 가져다 주실거란 엄마의 말을 기억하곤 느릿느릿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열면 어떡해."
다가 도로 닫았다.
─ 박지성
문을 똑똑 두드리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제노의 목소리가 꿈인가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신발장에 붙어있는 거울을 보니 이목구비가 사라진 본인의 얼굴이 꿈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뭐지? 오바. 내가 욕한거 들었나? 마음 속으로 했는데
내 얼굴은 더 오바
─ 박지성 캠프도 안 왔는데 바람 맞힐거야?
지성은 뽈뽈 거리며 당황하다 입고 있는 티셔츠 목부분을 잡고 최대한 끌어올려 얼굴을 가린 뒤 문을 조금 열었다.
"……."
"…왜 왔는데요."
"너 진짜 많이 부었다."
"아, 그런 소리 할 거면 가요 진짜."
지성은 또 울컥한 마음이 들어 나머지 한 쪽 손을 들어 눈을 가려버렸다.
지금 아프고 부운게 누구 때문인데? 이미 지성의 마음속에서는 사랑니와 지금 상태의 원인을 전부 제노 탓으로 돌렸기 때문에 뜬금없이 자신의 집을 찾아온 제노가 반갑기보단 원망스러웠다.
한참 지성을 빤히 바라보던 제노가 옷자락을 쥔 손이 침묵을 못 이겨 꼼지락 거리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똥손 보존법칙이라도 있나봐. 너가 없으니까 천러가 대뜸 수박 떨어트려서 깨트리고 이동혁은 음료수 두 번이나 엎질렀어."
"…그래서 뭐요."
"물놀이하는데 나재민은 튜브 터트려 먹고 황인준은 쌈장 들고 왔다면서 빈통 들고오고."
"……."
"…밤엔 구름도 많이 껴서 별이 안 보이더라."
"……."
"한 마디로 이번 캠프 완전히 물 건너갔단 뜻이야. 재미없었어. 다음에 다시 가, 같이."
사랑니 발치 휴유증으로 이젠 헛것이 들리나? 내가 지난 밤사이에 너무 꿈을 많이 꿔서 현실과 혼동하는 중인가?
지성은 눈을 가렸던 손까지 내린채 멍하니 제노를 바라봤다.
"이거 받아. 다른 애들도 다 너 걱정하니까 핸드폰 좀 켜놓고."
얼떨결에 제노의 손에서 묵직한 종이가방을 넘겨받은 지성이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는 제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우리 집 12층인데….
제노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희미해질 때까지 우두커니 현관 앞에 서 있던 지성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뭐가 지나간거지? 식탁에 앉아 남은 미음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지만 이미 식어 끈적끈적한 찰기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제노가 쥐어주고 간 종이가방을 뒤적였다.
상호명이 크게 박힌 플라스틱 통에 노란빛깔의 호박죽이 담겨있다. 통을 손에 쥐니 아직도 따뜬따끈한 온기가 전해진다. 괜시리 통을 만지작 거리던 지성은 먹던 미음을 옆으로 치운 뒤, 붉은 뚜껑을 잡아 열었다. 고소하면서 달달한 냄새가 천천히 올라왔다. 숟가락에 붙어있던 미음을 대충 털어내고 통에 든 노란 호박죽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거의 씹을 필요도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식감에 입을 다셨다.
노란 호박죽을 숟가락으로 뒤적이면서 입에 넣기를 반복하던 지성은 노란 티셔츠를 입고 흰 종이가방을 건내던 제노가 다시 떠올랐다. 자신의 손에 종이가방을 쥐어주곤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던 그 뒷모습을 다시금 생각하다 하루종일 꺼뒀던 핸드폰을 켰다.
다들 걱정했다던 제노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쥐 죽은 듯 조용하던 지성의 카카오톡에 평소 보지 못 했던 메시지의 양이 도착해있었다. 막상 많은 양의 메시지가 닥치니 무엇 부터 읽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하던 와중 실수로 제일 위에 있던 동혁의 대화방에 들어가게 됐다.
─ 지성아 아픈건 괜찮냐? 성장이란 원래 아픈 법
─ 우리 이따가 별 보러 가는데 안 자고 있음 영통 걸어라 오늘 날씨 끝내준다
─ (사진)
─ 막상 찍으려니까 잘 안 보이는데 오늘 진짜 대박이거등?
─ 하얀 점 보여? 저거 다 별이다?
─ 아픈거 괜찮아지면 연락주고 형한테 사랑니 무용담 들러줘라
…밤엔 구름도 많이 껴서 별이 안 보이더라.
갑자기 얼굴에 열이 화악 몰리는 기분이었다. 발치 이후에 왼쪽 뺨에만 몰려있던 뜨뜻함이 순식간에 귀 끝까지 이동했다.
이유도 모르고 일단 받았던 종이가방을 다시 뒤적거렸다. 아까는 죽통 밑에 깔려 미처 보지 못 한 진통제와 웬 하얀 돌멩이가 보였다.
돌멩이? 여기에 왜?
손으로 돌멩이를 요리조리 돌려보던 지성은 잠시 식었다 생각했던 얼굴이 방금 갓 쪄낸 떡 마냥 달아오른 걸 다시금 느꼈다. 이제노가 집앞으로 와 죽을 내민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꿈만 같은데 동혁이 보낸 카톡과 뜬금없이 하트 모양을 한 흰 돌멩이를 보니 정말 현실과 뚝 떨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지성은 자기도 모르게 뺨을 꼬집었다. 하필 왼쪽 뺨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뺨을 잡고 발을 콩콩 구르면서 생난리를 치던 지성은 이젠 뜬금없이 웃음이 푸슬푸슬 났다. 분명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만큼 아픈 걸 보니 꿈은 절대 아닌데 저 하트 모양을 한 흰 돌멩이가 혼자 자꾸 현실감에서 벗어나는 것만 같았다.
지성은 손에 돌멩이를 말아쥐고 핸드폰을 들어 제노와의 대화방에 들어가 뭐라 쓸까 한참을 고민하다 갑자기 올라온 말풍선에 화들짝 놀랐다.
─ 호박죽이 회복에 좋대 그리고 넌 부어도 귀여워
맨날 안 귀엽다 했으면서
사랑니가 마치 처음 났을 때처럼 심장 부근이 간질거렸다. 아무래도 사랑니의 원인이 이제노가 맞다고 혼자 확신을 한 지성의 눈과 뺨 그리고 입에도 확신의 웃음이 담겼다.
─
"이동혁 꼼꼼히 붙여. 우리 이번에 동아리원 다섯 명 아니면 빼도박도 못 하게 폐부야."
"네네, 소인은 그저 주상젠하 명을 따를 뿐입죠."
"아이고 젠하, 올해도 신입생이 가뭄이라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 합니다요."
"혹 비책이라도 있으신지…."
동아리 홍보 포스터를 붙이라 시켰더니 대뜸 상황극을 시작하는 동혁과 인준을 뒤로 한채 제노는 남은 포스터를 돌돌 말았다. 2학년 층도 전부 붙였으니 남은건 1학년 층이었다. 빨리 붙이고 슬그머니 사라진 나재민을 잡아 동아리방 청소를 시켜야겠단 생각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던 터였다.
"아 오바 어떡해. 진짜 죄송해요."
엄연히 말하면 남은 포스터 장수를 세느라 앞을 똑바로 보지 않은 제노의 잘못도 있다. 계단을 내려가다 중간 층에서 꺾던 와중 난대 없이 앞에서 뛰던 사람이랑 세게 부딪힌 제노는 손에 쥐고 있던 포스터를 우수수 떨어트렸다.
포스터만 떨어트린 제노와 달리 부딪힌 상대방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아프다는 온갖 의성어를 내더니 이내 어떡해와 죄송해요를 반복하며 연신 사과를 했다.
"…아니 앞 좀 잘 보고 다녀요."
원래 이런 핀잔을 뱉으려던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제노 스스로도 본인의 잘못이 없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고개도 못 들고 떨어진 포스터를 수습하던 상대를 돕기 위해 같이 쭈그린 제노는 별안간 눈이 마주치자 마음에도 없던 말을 뱉었다. 제노는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 처럼 심장이 불편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자기도 앞에 안 봤으면서
도로 고개를 푹 숙인채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혼자 중얼중얼 거린다.
"다 들려요."
"…죄송해요…."
땅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건내줬을 뿐인데 그새 구깃구깃 모서리가 눌린 포스터를 제노는 탁탁 털었다.
그럼 죄송합니다, 제노가 포스터 장수를 천천히 세자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던 상대는 저 한 마디를 뱉곤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버렸다.
노란색 명찰에 까만 글씨로 박지성
노란색이면 1학년이네.
"박지성."
모습이 사라지고 원래대로 고요하게 있던 마음이 다시 이상하게 요동친다. 아무래도 마음에 없는 얘기를 해서 그런거라고 제노는 생각했다.
포스터를 붙인 건 3월이건만 달력 한 장을 넘겨도 <우주 신비 탐사 동아리> 동방 문을 두드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이러다 동아리 폐지 되면 어떡하냐는 부원들의 징징거림을 뒤로하고 제노는 동방을 나섰다. 어제는 2학년 교실을 돌아다니며 동아리 소개를 하고 신청을 받았다. 오늘은 1학년 교실을 돌아다닐 차례다.
1반 2반 3반 4반….
앞선 반을 도는 내내 마음은 편안하기만 했다. 자신의 차례가 다가와 동아리 소개를 하는 동안에도 진짜 동아리 없어지려나, 이동혁 발도 넓은데 친구 좀 데려오지 따위의 태연스런 생각이나 했다.
그러다 5반에 들어가는 순간 또 다시 마음이 불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꾹꾹 눌러도 보고 원인을 찾아 주변을 둘러봤지만 보이는게 없었다. 찝찝한 상태로 동아리 소개를 마치는 순간 뒤에서 하이톤의 비명 소리에 이어 죄송합니다… 라는 기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노는 다시 고개를 기웃거려 가며 더 커져버린 불편함의 원인을
"안녕하세요."
"……."
"…우주 탐사 동아리 이제노 입니다."
찾았다.















